2017년 1월 5일 목요일

[오마이뉴스 교육 메인 글] 북한의 국정 교과서는 옳은가, 그른가.

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국검정혼용 제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준식 교육부장관의 말에 따르면 국검정혼용 제도는 희망하는 학교에 한 해 국정교과서를 주 교재로 사용하고 그 외 학교는 검정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졸속으로 추진된 국정교과서가 아직까지 폐지 수순을 밟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고, 희망 학교에 한 해 국정교과서가 실제로 배포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국정 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북한, 중국, 인도를 포함해 12개국이다. 국정 교과서가 왜곡된 시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진 사람들은 '북한 국사 교과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북한 교과서는 북한 정권에 의해 철저히 조작돼 있다. 국정교과서가 가진 문제점이자 본질적인 한계다.

2014년 탈북한 이철민 씨는 "남한 사람 대부분 이성계를 조선 건국의 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역적'이라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북한 사학계는 이성계를 '매국배족의 역적', 최영을 '애국명장'이라고 말한다. 같은 과거의 역사에도 남과 북의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 북한에서 이성계를 역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은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일부다.

"자기의 지위가 높아지자 고려정권을 빼앗을 음흉한 계책실현의 유리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이성계는 1388년 4월 요동원정의 기회를 타서 고려의 정권을 가로챘다. 위화도회군은 음흉한 정권탈취야망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엄중한 매국배족 행위였다"

"전국 도통사 최영이 총지휘한 요동공격은 원정군의 부사령관격으로 있던 우군 도통사 이성계의 배신적인 행위로 실패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세워 개경으로 쳐들어와 정권을 잡고, 최영을 충주로 유배 보냈다가 살해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정권을 탈취한 자'로 평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이성계를 위인으로 표현한다면 북한 정권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서다.

반대로 최영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한다. 평양 방송은 "최영은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자 청렴 결백해 아부아첨과 뇌물을 몰랐고, 싸움터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무적필승의 용장"이라고 치켜세운다. 더불어 최영은 요동공격으로 고려의 자주권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살해당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또한 철저히 이데올로기로 계산된 역사다.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북한식 역사관에서 최영은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으로 표현된다. 이 외 사관은 불필요하다. 북한 정권은 '마지막까지 북한을 지켜야 하는 충신'이라는 프레임만 취하면 된다.

한편, 남한 교과서에는 이성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교과서에 따라 서술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의견은 아래와 같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2011년 탈북한 김홍식 씨는 "남한과 같은 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북한에서 가르쳐서도, 가르칠 수도 없다. 만약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북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면 3대 세습까지 오지도 않았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씨는 "어릴 적부터 이성계를 배신자로 배워서 그런지 아직도 남한 역사 드라마를 볼 때 불편한 게 많다.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가 그랬다. 남북의 이질감을 느꼈다. 20년 넘게 북한에서 역사 세뇌를 당하다보니 역사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혼란스럽지만, 앞으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남북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기록과 사실이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된 기록으로서 바라볼 것인가, 있는 그대로 증거를 통한 객관적인 사실로 바라볼 것인가로 나뉜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굳이 분류하자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만큼 역사에 대한 개입이 과하다. '음흉한 계책실현', '배신', '매국배족'이라는 단어 선택이 그렇다. 이와 반대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사실로서의 역사다. 실제로 고려 말기는 기록으로 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이성계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관점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역사적 시각이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국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변형되는 역사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작된 역사가 일단 권력의 주도하에 주입되기 시작하면 3대 세습마저도 정당한 역사적 사실로 탈바꿈 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그르다.

국정교과서가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육부는 국검정혼용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소통 없이 만든 독재 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겠다는 것은 결국 북한과 같은 교육 독재, 정치적 세뇌 교육, 역사 날조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준식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국검정혼용 현장 적용 방안을 발표한 것은 국정교과서 보급의 강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아직도 지난 70년대 역사관에 사로잡혀 '졸속적으로 만들어진 국검정혼용 제도를 강제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70년대 사람이 있는 걸까. 있다면, 광화문으로 가서 촛불이 만들어 내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 현장 교과서부터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처럼 '이성계는 배신자'라는 하나의 프레임만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할 것이 아니라 시장 내 경쟁을 통해 다양한 교과서로 역사적 스펙트럼을 접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고 올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 경쟁에 자신 없는 몇몇은 국정 교과서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과거를 조작하는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옳은가, 그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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