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북한 주민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여성 24세, 남성 28세였다. 당시는 자유연애 보다 결혼으로 이어지는 중매를 중시했다. 여성의 나이가 25세를 넘어가면 ‘파철’이라고 말했다. 혼기가 지나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현재는 나이가 많아도 예전과 같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나이나 인물보다 상대의 경제적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결혼 상대가 이혼을 한 경험이 있어도 쉽게 이해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조심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보다 현실에 충실한 상대를 선호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과거에 연애 상대 남성을 선택할 때 제대군인, 당원, 대학졸업생을 선호했다. 이는 출세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 후 당 간부들이 숙청되고, 수시로 처벌되면서 선호 조건이 달라졌다.
근래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친척이 있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남성이 인기를 끈다. 반면 여성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인기 신붓감으로 꼽힌다. 외화벌이 직장에서 일하거나 가격이 높은 상품을 시장에서 파는 여성을 선호한다.
가족 중 탈북자가 있는 결혼 상대자의 인기 또한 늘고 있다. 안정적인 송금을 보내준다는 이유에서다. 탈북자가 있는 가정은 이웃 주민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탈북자가 보내주는 송금액으로 장사를 하고, 간부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주는 뇌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청춘들의 연애는 한류를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길에서 남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봤지만 지금은 스킨십이 더 대담해졌다. 남자친구를 가리켜 ‘오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만난 지 1주기, 2주기 등의 기념일을 챙겨 값이 나가는 선물을 교환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녀가 주고받는 선물은 대개 장갑, 양말, 의류 등이었지만 현재는 고급시계와 한국산 화장품을 선물한다.
고급시계가 인기를 끈 것은 김정은과 리설주의 영향이 컸다. 김정은 집권 초기 김정은과 리설주가 착용한 시계가 한국의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의 청춘 남녀 사이에도 그들의 시계는 숱한 화제를 남겼다. 이 후 기념일 선물로 고급시계가 인기를 끌게 됐다. 고급시계는 북한에서 대략 1,000위안(원화 17만원)정도다.
최근에는 연애하는 남녀가 여행을 가는 일도 잦아졌다. 보안원 혹은 보위원에게 담배 한 갑 이상의 뇌물을 주고 도장을 받은 뒤 시 행정위원회에서 여행증을 발급받는다. 북한 연인들은 대체로 강원도 바다를 주로 가고 일부는 평양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한다. 역 근처마다 숙소가 있기 때문에 숙박에 대한 걱정은 없는 편이다.
북한 청춘 남녀들 사이에서 피임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남성들이 중국산 콘돔을 주로 쓰다가 요즘에는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편이다. 여성들은 루프 삽입을 통해서 임신을 예방한다. 루프 시술은 북한에서 평균 150위안(원화 2만 5천원) 정도다. 북한 연인들은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상당히 경계한다. 출산을 하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가 급증하면서 가정을 꾸리기 전 오랫동안 상대를 파악하고, 후회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연인이 늘고 있다. 때문에 결혼 전 동거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바뀌고 있는 추세다.
북한은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보수적이었다. 과거 중매로 결혼하던 시기에는 당연히 결혼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인과 만나다 헤어지면 다른 남자와 선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연애 기간을 길게 갖고 동거를 통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청춘 남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 전 집을 얻어 동거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열악한 경제 문제로 이혼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권은 공식적으로 정식 이혼을 승인해주지 않았지만 가정 문제를 겪는 부부들은 서로 갈라져 별거 생활을 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지금 북한의 결혼 세대인 30대는 이혼율이 특히 높았던 시대를 거쳤다. 때문에 결혼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동거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동거를 하는 커플은 함께 살면서 돈을 모아 결혼 계획이나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자금을 마련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결혼 예단 풍습도 많이 변했다. 북한은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예단을 전달하는 약혼식을 한다. 약혼식에 필요한 음식과 결혼 첫 날 신부가 입을 옷감, 내의, 양복, 화장품 등을 신랑 측에서 예단으로 준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품이다. 한국산 화장품 한 세트면 최고의 예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신부가 해야 할 예단은 결혼 후 사용할 가구, 이불, 부엌에서 쓰는 가마 그릇이다. 신랑 첫날 옷과 신랑 측 부모에게 줄 양복과 옷도 보내주어야 한다. 신혼집은 경우에 따라 양측에서 조율해 준비한다.
결혼식 당일에는 양 집을 오가며 상을 받는다. 갖가지 음식을 놓고 두 집안에서 신랑과 신부를 맞이한다. 신랑은 보통 오전 11시 경에 신부 집에 간다. 신랑은 신부 집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오후가 돼서야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북한 결혼식은 하루 종일 진행된다. 결혼식은 주로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한다. 여름에는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음식이 상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다. 북한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없고, 있는 집도 잦은 정전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근래에는 국영 결혼식 식당이나 개인 식당에서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한은 2000년도 초반 평양에 결혼식 식당을 개업했다. 당시 많은 주민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국영 결혼식 식당은 음식의 질이 낮고 꽃 장식 등의 겉치레만 신경을 써서 금세 인기가 식었다. 북한 주민은 국영 결혼식이 실속 없는 식장이라며 ‘헛가다 결혼식장’이라고 말한다.
개인 식당을 빌려 결혼하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끝낼 수 있고, 하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평양 뿐 아니라 지방의 유명 개인 식당들은 결혼식 진행 시간을 3시간으로 정해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개인 식당은 결혼식을 위해 한복과 예복을 따로 제공해주고 있고 사진까지 찍어준다.
최근에는 결혼식도 간편하게 하는 추세여서 개인 식당을 빌리지 않는 사람들은 한 집에서 ‘합동결혼식’을 치른다.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가 만나 최소한의 결혼식 비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합동결혼식을 치르면 비용이 줄어들어 장사를 할 수 있는 여윳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예 결혼식을 하지 않고 한복과 턱시도를 빌려 입어 사진만 남기고 사는 젊은 부부도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결혼식 비용을 줄여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주례사도 변했다. 과거에는 당 조직 책임자나 간부가 주례사를 했지만, 지금은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돈주를 초청해 실제로 삶에 도움이 되는 주례사를 듣는다. 하객들도 주례사를 통해 ‘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며 반기는 추세다.
북한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뒤풀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노동당을 칭송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의 친구들만 남아 있으면 커튼을 치고 한국 음악을 켠다. 자유롭게 K-POP을 들으면서 결혼식을 축하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대부분 남한 트로트 가요에 맞춰 춤을 춘다. 신랑, 신부도 한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함께 춤을 춘다. 북한 결혼 뒤풀이 문화를 바꾸어놓은 것은 한류의 영향이 크다.
결혼 후에도 남한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남한 드라마로 인해 희석되고 있다. 북한 아내들은 권위 있는 모습보다 다정한 남편을 반긴다. 심지어 무뚝뚝한 남편에게 아내는 “남한 드라마 좀 보라”며 꾸짖는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남편의 지위가 상당히 약해졌다. 북한 여성들은 집에만 있는 남성을 두고 ‘멍멍이’, ‘자물쇠’라고 표현한다. 집을 지키는 것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냉소적 표현이다.
북한에서는 여성이 장사를 나가면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남성이 늘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마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를 데리러 가는 남성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
출산 후의 모습도 변했다. 아내가 출산을 위해 산원에 있으면 과거에는 남편이 산원에 찾아가지 않았다. 남성들 중 일부는 산원에 찾아가는 남편을 손가락질 하며 “남자는 산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내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 근래에는 아내 곁을 지켜주는 게 더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북한의 이혼율이 높아졌다. 탈북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탈북하지 못하면 북한의 부부는 이혼을 감행한다. 남아있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실제 이혼하려는 가정에서조차 탈북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의심을 받는다.
북한은 지금 연애부터 결혼, 이혼까지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자유’가 있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것, 경직되어 있던 결혼관이 동거를 시작으로 자유로운 만남과 이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 이혼 또한 자유롭게 자기 결정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등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은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이제는 북한 정권이 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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