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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일 목요일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월간 북한 기고 글] 북한의 연예와 결혼 문화
2000년대 초반 북한 주민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여성 24세, 남성 28세였다. 당시는 자유연애 보다 결혼으로 이어지는 중매를 중시했다. 여성의 나이가 25세를 넘어가면 ‘파철’이라고 말했다. 혼기가 지나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현재는 나이가 많아도 예전과 같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나이나 인물보다 상대의 경제적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결혼 상대가 이혼을 한 경험이 있어도 쉽게 이해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조심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보다 현실에 충실한 상대를 선호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과거에 연애 상대 남성을 선택할 때 제대군인, 당원, 대학졸업생을 선호했다. 이는 출세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 후 당 간부들이 숙청되고, 수시로 처벌되면서 선호 조건이 달라졌다.
근래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친척이 있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남성이 인기를 끈다. 반면 여성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인기 신붓감으로 꼽힌다. 외화벌이 직장에서 일하거나 가격이 높은 상품을 시장에서 파는 여성을 선호한다.
가족 중 탈북자가 있는 결혼 상대자의 인기 또한 늘고 있다. 안정적인 송금을 보내준다는 이유에서다. 탈북자가 있는 가정은 이웃 주민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탈북자가 보내주는 송금액으로 장사를 하고, 간부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주는 뇌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청춘들의 연애는 한류를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길에서 남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봤지만 지금은 스킨십이 더 대담해졌다. 남자친구를 가리켜 ‘오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만난 지 1주기, 2주기 등의 기념일을 챙겨 값이 나가는 선물을 교환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녀가 주고받는 선물은 대개 장갑, 양말, 의류 등이었지만 현재는 고급시계와 한국산 화장품을 선물한다.
고급시계가 인기를 끈 것은 김정은과 리설주의 영향이 컸다. 김정은 집권 초기 김정은과 리설주가 착용한 시계가 한국의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의 청춘 남녀 사이에도 그들의 시계는 숱한 화제를 남겼다. 이 후 기념일 선물로 고급시계가 인기를 끌게 됐다. 고급시계는 북한에서 대략 1,000위안(원화 17만원)정도다.
최근에는 연애하는 남녀가 여행을 가는 일도 잦아졌다. 보안원 혹은 보위원에게 담배 한 갑 이상의 뇌물을 주고 도장을 받은 뒤 시 행정위원회에서 여행증을 발급받는다. 북한 연인들은 대체로 강원도 바다를 주로 가고 일부는 평양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한다. 역 근처마다 숙소가 있기 때문에 숙박에 대한 걱정은 없는 편이다.
북한 청춘 남녀들 사이에서 피임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남성들이 중국산 콘돔을 주로 쓰다가 요즘에는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편이다. 여성들은 루프 삽입을 통해서 임신을 예방한다. 루프 시술은 북한에서 평균 150위안(원화 2만 5천원) 정도다. 북한 연인들은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상당히 경계한다. 출산을 하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가 급증하면서 가정을 꾸리기 전 오랫동안 상대를 파악하고, 후회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연인이 늘고 있다. 때문에 결혼 전 동거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바뀌고 있는 추세다.
북한은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보수적이었다. 과거 중매로 결혼하던 시기에는 당연히 결혼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인과 만나다 헤어지면 다른 남자와 선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연애 기간을 길게 갖고 동거를 통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청춘 남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 전 집을 얻어 동거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열악한 경제 문제로 이혼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권은 공식적으로 정식 이혼을 승인해주지 않았지만 가정 문제를 겪는 부부들은 서로 갈라져 별거 생활을 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지금 북한의 결혼 세대인 30대는 이혼율이 특히 높았던 시대를 거쳤다. 때문에 결혼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동거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동거를 하는 커플은 함께 살면서 돈을 모아 결혼 계획이나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자금을 마련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결혼 예단 풍습도 많이 변했다. 북한은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예단을 전달하는 약혼식을 한다. 약혼식에 필요한 음식과 결혼 첫 날 신부가 입을 옷감, 내의, 양복, 화장품 등을 신랑 측에서 예단으로 준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품이다. 한국산 화장품 한 세트면 최고의 예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신부가 해야 할 예단은 결혼 후 사용할 가구, 이불, 부엌에서 쓰는 가마 그릇이다. 신랑 첫날 옷과 신랑 측 부모에게 줄 양복과 옷도 보내주어야 한다. 신혼집은 경우에 따라 양측에서 조율해 준비한다.
결혼식 당일에는 양 집을 오가며 상을 받는다. 갖가지 음식을 놓고 두 집안에서 신랑과 신부를 맞이한다. 신랑은 보통 오전 11시 경에 신부 집에 간다. 신랑은 신부 집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오후가 돼서야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북한 결혼식은 하루 종일 진행된다. 결혼식은 주로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한다. 여름에는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음식이 상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다. 북한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없고, 있는 집도 잦은 정전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근래에는 국영 결혼식 식당이나 개인 식당에서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한은 2000년도 초반 평양에 결혼식 식당을 개업했다. 당시 많은 주민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국영 결혼식 식당은 음식의 질이 낮고 꽃 장식 등의 겉치레만 신경을 써서 금세 인기가 식었다. 북한 주민은 국영 결혼식이 실속 없는 식장이라며 ‘헛가다 결혼식장’이라고 말한다.
개인 식당을 빌려 결혼하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끝낼 수 있고, 하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평양 뿐 아니라 지방의 유명 개인 식당들은 결혼식 진행 시간을 3시간으로 정해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개인 식당은 결혼식을 위해 한복과 예복을 따로 제공해주고 있고 사진까지 찍어준다.
최근에는 결혼식도 간편하게 하는 추세여서 개인 식당을 빌리지 않는 사람들은 한 집에서 ‘합동결혼식’을 치른다.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가 만나 최소한의 결혼식 비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합동결혼식을 치르면 비용이 줄어들어 장사를 할 수 있는 여윳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예 결혼식을 하지 않고 한복과 턱시도를 빌려 입어 사진만 남기고 사는 젊은 부부도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결혼식 비용을 줄여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주례사도 변했다. 과거에는 당 조직 책임자나 간부가 주례사를 했지만, 지금은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돈주를 초청해 실제로 삶에 도움이 되는 주례사를 듣는다. 하객들도 주례사를 통해 ‘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며 반기는 추세다.
북한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뒤풀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노동당을 칭송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의 친구들만 남아 있으면 커튼을 치고 한국 음악을 켠다. 자유롭게 K-POP을 들으면서 결혼식을 축하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대부분 남한 트로트 가요에 맞춰 춤을 춘다. 신랑, 신부도 한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함께 춤을 춘다. 북한 결혼 뒤풀이 문화를 바꾸어놓은 것은 한류의 영향이 크다.
결혼 후에도 남한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남한 드라마로 인해 희석되고 있다. 북한 아내들은 권위 있는 모습보다 다정한 남편을 반긴다. 심지어 무뚝뚝한 남편에게 아내는 “남한 드라마 좀 보라”며 꾸짖는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남편의 지위가 상당히 약해졌다. 북한 여성들은 집에만 있는 남성을 두고 ‘멍멍이’, ‘자물쇠’라고 표현한다. 집을 지키는 것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냉소적 표현이다.
북한에서는 여성이 장사를 나가면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남성이 늘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마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를 데리러 가는 남성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
출산 후의 모습도 변했다. 아내가 출산을 위해 산원에 있으면 과거에는 남편이 산원에 찾아가지 않았다. 남성들 중 일부는 산원에 찾아가는 남편을 손가락질 하며 “남자는 산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내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 근래에는 아내 곁을 지켜주는 게 더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북한의 이혼율이 높아졌다. 탈북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탈북하지 못하면 북한의 부부는 이혼을 감행한다. 남아있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실제 이혼하려는 가정에서조차 탈북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의심을 받는다.
북한은 지금 연애부터 결혼, 이혼까지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자유’가 있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것, 경직되어 있던 결혼관이 동거를 시작으로 자유로운 만남과 이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 이혼 또한 자유롭게 자기 결정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등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은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이제는 북한 정권이 변할 차례다.
현재는 나이가 많아도 예전과 같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나이나 인물보다 상대의 경제적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결혼 상대가 이혼을 한 경험이 있어도 쉽게 이해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조심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보다 현실에 충실한 상대를 선호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과거에 연애 상대 남성을 선택할 때 제대군인, 당원, 대학졸업생을 선호했다. 이는 출세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 후 당 간부들이 숙청되고, 수시로 처벌되면서 선호 조건이 달라졌다.
근래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친척이 있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남성이 인기를 끈다. 반면 여성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인기 신붓감으로 꼽힌다. 외화벌이 직장에서 일하거나 가격이 높은 상품을 시장에서 파는 여성을 선호한다.
가족 중 탈북자가 있는 결혼 상대자의 인기 또한 늘고 있다. 안정적인 송금을 보내준다는 이유에서다. 탈북자가 있는 가정은 이웃 주민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탈북자가 보내주는 송금액으로 장사를 하고, 간부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주는 뇌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청춘들의 연애는 한류를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길에서 남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봤지만 지금은 스킨십이 더 대담해졌다. 남자친구를 가리켜 ‘오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만난 지 1주기, 2주기 등의 기념일을 챙겨 값이 나가는 선물을 교환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녀가 주고받는 선물은 대개 장갑, 양말, 의류 등이었지만 현재는 고급시계와 한국산 화장품을 선물한다.
고급시계가 인기를 끈 것은 김정은과 리설주의 영향이 컸다. 김정은 집권 초기 김정은과 리설주가 착용한 시계가 한국의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의 청춘 남녀 사이에도 그들의 시계는 숱한 화제를 남겼다. 이 후 기념일 선물로 고급시계가 인기를 끌게 됐다. 고급시계는 북한에서 대략 1,000위안(원화 17만원)정도다.
최근에는 연애하는 남녀가 여행을 가는 일도 잦아졌다. 보안원 혹은 보위원에게 담배 한 갑 이상의 뇌물을 주고 도장을 받은 뒤 시 행정위원회에서 여행증을 발급받는다. 북한 연인들은 대체로 강원도 바다를 주로 가고 일부는 평양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한다. 역 근처마다 숙소가 있기 때문에 숙박에 대한 걱정은 없는 편이다.
북한 청춘 남녀들 사이에서 피임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남성들이 중국산 콘돔을 주로 쓰다가 요즘에는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편이다. 여성들은 루프 삽입을 통해서 임신을 예방한다. 루프 시술은 북한에서 평균 150위안(원화 2만 5천원) 정도다. 북한 연인들은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상당히 경계한다. 출산을 하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가 급증하면서 가정을 꾸리기 전 오랫동안 상대를 파악하고, 후회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연인이 늘고 있다. 때문에 결혼 전 동거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바뀌고 있는 추세다.
북한은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보수적이었다. 과거 중매로 결혼하던 시기에는 당연히 결혼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인과 만나다 헤어지면 다른 남자와 선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연애 기간을 길게 갖고 동거를 통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청춘 남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 전 집을 얻어 동거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열악한 경제 문제로 이혼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권은 공식적으로 정식 이혼을 승인해주지 않았지만 가정 문제를 겪는 부부들은 서로 갈라져 별거 생활을 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지금 북한의 결혼 세대인 30대는 이혼율이 특히 높았던 시대를 거쳤다. 때문에 결혼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동거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동거를 하는 커플은 함께 살면서 돈을 모아 결혼 계획이나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자금을 마련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결혼 예단 풍습도 많이 변했다. 북한은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예단을 전달하는 약혼식을 한다. 약혼식에 필요한 음식과 결혼 첫 날 신부가 입을 옷감, 내의, 양복, 화장품 등을 신랑 측에서 예단으로 준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품이다. 한국산 화장품 한 세트면 최고의 예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신부가 해야 할 예단은 결혼 후 사용할 가구, 이불, 부엌에서 쓰는 가마 그릇이다. 신랑 첫날 옷과 신랑 측 부모에게 줄 양복과 옷도 보내주어야 한다. 신혼집은 경우에 따라 양측에서 조율해 준비한다.
결혼식 당일에는 양 집을 오가며 상을 받는다. 갖가지 음식을 놓고 두 집안에서 신랑과 신부를 맞이한다. 신랑은 보통 오전 11시 경에 신부 집에 간다. 신랑은 신부 집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오후가 돼서야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북한 결혼식은 하루 종일 진행된다. 결혼식은 주로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한다. 여름에는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음식이 상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다. 북한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없고, 있는 집도 잦은 정전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근래에는 국영 결혼식 식당이나 개인 식당에서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한은 2000년도 초반 평양에 결혼식 식당을 개업했다. 당시 많은 주민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국영 결혼식 식당은 음식의 질이 낮고 꽃 장식 등의 겉치레만 신경을 써서 금세 인기가 식었다. 북한 주민은 국영 결혼식이 실속 없는 식장이라며 ‘헛가다 결혼식장’이라고 말한다.
개인 식당을 빌려 결혼하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끝낼 수 있고, 하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평양 뿐 아니라 지방의 유명 개인 식당들은 결혼식 진행 시간을 3시간으로 정해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개인 식당은 결혼식을 위해 한복과 예복을 따로 제공해주고 있고 사진까지 찍어준다.
최근에는 결혼식도 간편하게 하는 추세여서 개인 식당을 빌리지 않는 사람들은 한 집에서 ‘합동결혼식’을 치른다.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가 만나 최소한의 결혼식 비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합동결혼식을 치르면 비용이 줄어들어 장사를 할 수 있는 여윳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예 결혼식을 하지 않고 한복과 턱시도를 빌려 입어 사진만 남기고 사는 젊은 부부도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결혼식 비용을 줄여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주례사도 변했다. 과거에는 당 조직 책임자나 간부가 주례사를 했지만, 지금은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돈주를 초청해 실제로 삶에 도움이 되는 주례사를 듣는다. 하객들도 주례사를 통해 ‘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며 반기는 추세다.
북한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뒤풀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노동당을 칭송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의 친구들만 남아 있으면 커튼을 치고 한국 음악을 켠다. 자유롭게 K-POP을 들으면서 결혼식을 축하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대부분 남한 트로트 가요에 맞춰 춤을 춘다. 신랑, 신부도 한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함께 춤을 춘다. 북한 결혼 뒤풀이 문화를 바꾸어놓은 것은 한류의 영향이 크다.
결혼 후에도 남한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남한 드라마로 인해 희석되고 있다. 북한 아내들은 권위 있는 모습보다 다정한 남편을 반긴다. 심지어 무뚝뚝한 남편에게 아내는 “남한 드라마 좀 보라”며 꾸짖는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남편의 지위가 상당히 약해졌다. 북한 여성들은 집에만 있는 남성을 두고 ‘멍멍이’, ‘자물쇠’라고 표현한다. 집을 지키는 것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냉소적 표현이다.
북한에서는 여성이 장사를 나가면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남성이 늘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마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를 데리러 가는 남성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
출산 후의 모습도 변했다. 아내가 출산을 위해 산원에 있으면 과거에는 남편이 산원에 찾아가지 않았다. 남성들 중 일부는 산원에 찾아가는 남편을 손가락질 하며 “남자는 산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내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 근래에는 아내 곁을 지켜주는 게 더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북한의 이혼율이 높아졌다. 탈북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탈북하지 못하면 북한의 부부는 이혼을 감행한다. 남아있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실제 이혼하려는 가정에서조차 탈북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의심을 받는다.
북한은 지금 연애부터 결혼, 이혼까지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자유’가 있다. 중매 보다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것, 경직되어 있던 결혼관이 동거를 시작으로 자유로운 만남과 이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 이혼 또한 자유롭게 자기 결정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등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은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이제는 북한 정권이 변할 차례다.
[서울신문 기고 글] 탈북 마약상 인터뷰 "북한 보위원들도 마약 유통 관여...근절 어려워"
함경남도 함흥 소식통이 북한 사회에 마약을 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함흥은 북한 내 대표적인 마약 제조지다. 소식통은 함흥을 중심으로 마약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투약 방법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 구역에서 마약 밀매를 하다가 2015년 1월 남한에 온 김OO(36·남)씨 또한 마약을 흡입하는 사람은 줄고 직접 주사로 투약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북한 마약 실태를 물었다.
- 최근 북한 마약 동향을 살펴보면 직접 혈관에 주사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데.
"사실이다. 다만 마약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투약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 흡입하는 방법으로 마약을 시작하고 나서 혈관 주사 투약을 한다. 북한 내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흡입에서 투약으로 바뀌는 과정을 '돌리기'라고 한다."
- 흡입과 투약은 어떤 차이가 있나?
"흡입하는 마약은 투약보다 중독성이 덜하다. 흡입으로 마약을 시작하는 사람은 처음에 보통 0.1g에서 만족을 하다가 점차 내성이 생겨 1g까지 찾는다. 그런 사람들은 마약 흡입 경험이 오래된 사람이다. 그래서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주사 투약이다. 일명 '혈관 직통 주사'다.
코로 흡입하는 마약은 담배와 비슷하다. 본인이 끊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끊을 수 있다. 실제로 돈이 없어 일정 기간 이상 약을 흡입하지 못한 사람을 자주 봤는데 특별한 발작이나 금단 증세가 없었다. 단지 '돈이 있으면 흡입하겠다' 정도였다.
투약은 다르다. 혈관에 몇 번 투약을 시작하면 바로 중독된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투약자라고 하면 중독이라며 끊으라고 권유할 정도다. 하지만 끊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북한에서 이렇게 쉽게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약자들은 마약이 없으면 손을 벌벌 떤다."
-북한의 마약 유통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북한의 마약 유통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밀수 마약이다. 전문적인 밀수꾼이 마약을 밀수하는데 최근에는 단속에 대한 위험이 높아져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꽃제비에게 돈을 주고 밀수를 시킨다. 단속돼도 꽃제비 선에서 끊을 수 있다. 중국 마약은 효과가 미비하고 마약 농도가 낮아 인기가 없는 편이다. 가짜도 많다.
두 번째는 북한 내부에서 생산하는 마약이다. 함흥과 청진의 제약공장에서 마약을 생산한다. 함흥제약공장 지하 3층은 이미 마약 제조로 유명하지 않나. 북한에서 생산되는 마약은 국경지대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굉장히 고농도고 중독성이 높다. 마약 품질도 좋다. 한 번 거래하면 사람들이 계속 찾는다.
세 번째는 마약 밀수꾼이 개인적으로 재배하는 소량의 마약이다. 소규모 집단에서 거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장사꾼들이 만든 마약 담배 중 '삥초'라는 것이 있다. 담배 안에 한 개 피만 마약을 넣어서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북한에서 인기가 좋다."
"북한 목욕탕은 마약탕"
- 마약은 주로 어디서 하는가?
"과거에는 주로 목욕탕에서 마약을 했다. 북한 목욕탕 안에는 독탕이 있는데 시중가의 1.5배 정도 주면 단속을 피하게 도와주고 여자도 들여보내 준다. 그래서 한때 목욕탕 주변에 성병이 유행하기도 했다. 북한 목욕탕은 마약탕이다. 하여튼 요새는 단속이 심해져서 집에서 몰래 마약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산에 올라가 단체로 마약을 즐긴다. 집은 단속이 들어오면 제한된 공간이라 도망가기가 쉽지 않은데 산은 숨기가 편해서 그렇다."
- 북한에서 마약 단속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보안원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칼을 휘두르는 경우가 있고 돌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투약하면 환각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실제 북한 보위원에게 마약 투약자를 검거한 사례를 들었다. 투약자를 심문하는데 갑자기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찢고 자신은 무죄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씨 부자의 초상화를 찢는다는 건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고 즉결 심판이 가능하다. 일단 약발을 없애기 위해 투약자를 독방에 13시간 동안 감금했는데 계속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보위원의 말에 따르면 이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하는데 상부에 보고됐기 때문에 그는 이미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그렇다면, 북한 보안 당국은 마약 투약자들에 관련돼서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투약자가 많지 않아 교화하거나 중독이 심한 경우에 사형을 집행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날카로워져 가고 날로 늘어가는 투약자를 전부 처벌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마약 제조자와 유통하는 사람을 검거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이미 중독된 사람은 정신병원에 며칠 동안 강제로 감금해서 마약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보위원들이 유통 과정의 마약을 압수해 암시장에 팔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북한에서 마약이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북한 보위원 사이에서 마약 검거반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단속을 한 번만 잘해도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어린아이마저 마약에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마약 투약자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려되는 수준 이상이다. 마약 범죄율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북한 인권과 더불어 북한 내 마약 근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신종 마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 마약과 무엇이 다른가?
"신종 마약은 감기약 먹듯이 술에 타 먹으면 된다.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신종 마약은 여성에게 더 인기다. 남성들이 여성들 몰래 술에 타주다가 중독되기 때문이다. 권력층의 자녀들이 애용하는 마약이다. 대학가에 신종 마약을 통제하는 특별 감시반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감시가 되지 않고 있다. 권력층의 자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반 약과 똑같이 생겨서 단속이 더 어렵다. 보위원들은 소량을 직접 먹어보고 마약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일부 주민은 신종 마약을 먹으면 신경통과 치매 치료에 좋다는 소문을 믿고 복용한다. 치매에 걸린 여성이 마약을 하고 기억을 되찾은 사례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실제로 치매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약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건 한번 시작하면 끊기 힘들다. 북한처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끊는 게 아니면 흡입이든 투약이든 신종마약이든 쉽게 중독된다. 누구든 행여 호기심에라도, 마약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북한에 있을 때 먹고 살기가 어려워 마약 장사를 시작했는데 개인적인 이익만 따질 줄 알았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보겠다. 앞으로 북한의 마약 실태를 더 많이 알려서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뿐 아니라 마약과 관련된 제재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 구역에서 마약 밀매를 하다가 2015년 1월 남한에 온 김OO(36·남)씨 또한 마약을 흡입하는 사람은 줄고 직접 주사로 투약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북한 마약 실태를 물었다.
- 최근 북한 마약 동향을 살펴보면 직접 혈관에 주사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데.
"사실이다. 다만 마약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투약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 흡입하는 방법으로 마약을 시작하고 나서 혈관 주사 투약을 한다. 북한 내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흡입에서 투약으로 바뀌는 과정을 '돌리기'라고 한다."
- 흡입과 투약은 어떤 차이가 있나?
"흡입하는 마약은 투약보다 중독성이 덜하다. 흡입으로 마약을 시작하는 사람은 처음에 보통 0.1g에서 만족을 하다가 점차 내성이 생겨 1g까지 찾는다. 그런 사람들은 마약 흡입 경험이 오래된 사람이다. 그래서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주사 투약이다. 일명 '혈관 직통 주사'다.
코로 흡입하는 마약은 담배와 비슷하다. 본인이 끊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끊을 수 있다. 실제로 돈이 없어 일정 기간 이상 약을 흡입하지 못한 사람을 자주 봤는데 특별한 발작이나 금단 증세가 없었다. 단지 '돈이 있으면 흡입하겠다' 정도였다.
투약은 다르다. 혈관에 몇 번 투약을 시작하면 바로 중독된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투약자라고 하면 중독이라며 끊으라고 권유할 정도다. 하지만 끊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북한에서 이렇게 쉽게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약자들은 마약이 없으면 손을 벌벌 떤다."
-북한의 마약 유통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북한의 마약 유통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밀수 마약이다. 전문적인 밀수꾼이 마약을 밀수하는데 최근에는 단속에 대한 위험이 높아져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꽃제비에게 돈을 주고 밀수를 시킨다. 단속돼도 꽃제비 선에서 끊을 수 있다. 중국 마약은 효과가 미비하고 마약 농도가 낮아 인기가 없는 편이다. 가짜도 많다.
두 번째는 북한 내부에서 생산하는 마약이다. 함흥과 청진의 제약공장에서 마약을 생산한다. 함흥제약공장 지하 3층은 이미 마약 제조로 유명하지 않나. 북한에서 생산되는 마약은 국경지대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굉장히 고농도고 중독성이 높다. 마약 품질도 좋다. 한 번 거래하면 사람들이 계속 찾는다.
세 번째는 마약 밀수꾼이 개인적으로 재배하는 소량의 마약이다. 소규모 집단에서 거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장사꾼들이 만든 마약 담배 중 '삥초'라는 것이 있다. 담배 안에 한 개 피만 마약을 넣어서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북한에서 인기가 좋다."
"북한 목욕탕은 마약탕"
- 마약은 주로 어디서 하는가?
"과거에는 주로 목욕탕에서 마약을 했다. 북한 목욕탕 안에는 독탕이 있는데 시중가의 1.5배 정도 주면 단속을 피하게 도와주고 여자도 들여보내 준다. 그래서 한때 목욕탕 주변에 성병이 유행하기도 했다. 북한 목욕탕은 마약탕이다. 하여튼 요새는 단속이 심해져서 집에서 몰래 마약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산에 올라가 단체로 마약을 즐긴다. 집은 단속이 들어오면 제한된 공간이라 도망가기가 쉽지 않은데 산은 숨기가 편해서 그렇다."
- 북한에서 마약 단속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보안원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칼을 휘두르는 경우가 있고 돌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투약하면 환각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실제 북한 보위원에게 마약 투약자를 검거한 사례를 들었다. 투약자를 심문하는데 갑자기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찢고 자신은 무죄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씨 부자의 초상화를 찢는다는 건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고 즉결 심판이 가능하다. 일단 약발을 없애기 위해 투약자를 독방에 13시간 동안 감금했는데 계속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보위원의 말에 따르면 이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하는데 상부에 보고됐기 때문에 그는 이미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그렇다면, 북한 보안 당국은 마약 투약자들에 관련돼서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투약자가 많지 않아 교화하거나 중독이 심한 경우에 사형을 집행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날카로워져 가고 날로 늘어가는 투약자를 전부 처벌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마약 제조자와 유통하는 사람을 검거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이미 중독된 사람은 정신병원에 며칠 동안 강제로 감금해서 마약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보위원들이 유통 과정의 마약을 압수해 암시장에 팔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북한에서 마약이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북한 보위원 사이에서 마약 검거반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단속을 한 번만 잘해도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어린아이마저 마약에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마약 투약자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려되는 수준 이상이다. 마약 범죄율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북한 인권과 더불어 북한 내 마약 근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신종 마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 마약과 무엇이 다른가?
"신종 마약은 감기약 먹듯이 술에 타 먹으면 된다.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신종 마약은 여성에게 더 인기다. 남성들이 여성들 몰래 술에 타주다가 중독되기 때문이다. 권력층의 자녀들이 애용하는 마약이다. 대학가에 신종 마약을 통제하는 특별 감시반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감시가 되지 않고 있다. 권력층의 자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반 약과 똑같이 생겨서 단속이 더 어렵다. 보위원들은 소량을 직접 먹어보고 마약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일부 주민은 신종 마약을 먹으면 신경통과 치매 치료에 좋다는 소문을 믿고 복용한다. 치매에 걸린 여성이 마약을 하고 기억을 되찾은 사례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실제로 치매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약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건 한번 시작하면 끊기 힘들다. 북한처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끊는 게 아니면 흡입이든 투약이든 신종마약이든 쉽게 중독된다. 누구든 행여 호기심에라도, 마약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북한에 있을 때 먹고 살기가 어려워 마약 장사를 시작했는데 개인적인 이익만 따질 줄 알았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보겠다. 앞으로 북한의 마약 실태를 더 많이 알려서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뿐 아니라 마약과 관련된 제재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2017년 1월 5일 목요일
[오마이뉴스 교육 메인 글] 북한의 국정 교과서는 옳은가, 그른가.
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국검정혼용 제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준식 교육부장관의 말에 따르면 국검정혼용 제도는 희망하는 학교에 한 해 국정교과서를 주 교재로 사용하고 그 외 학교는 검정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졸속으로 추진된 국정교과서가 아직까지 폐지 수순을 밟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고, 희망 학교에 한 해 국정교과서가 실제로 배포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국정 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북한, 중국, 인도를 포함해 12개국이다. 국정 교과서가 왜곡된 시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진 사람들은 '북한 국사 교과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북한 교과서는 북한 정권에 의해 철저히 조작돼 있다. 국정교과서가 가진 문제점이자 본질적인 한계다.
2014년 탈북한 이철민 씨는 "남한 사람 대부분 이성계를 조선 건국의 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역적'이라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북한 사학계는 이성계를 '매국배족의 역적', 최영을 '애국명장'이라고 말한다. 같은 과거의 역사에도 남과 북의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 북한에서 이성계를 역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은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일부다.
"자기의 지위가 높아지자 고려정권을 빼앗을 음흉한 계책실현의 유리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이성계는 1388년 4월 요동원정의 기회를 타서 고려의 정권을 가로챘다. 위화도회군은 음흉한 정권탈취야망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엄중한 매국배족 행위였다"
"전국 도통사 최영이 총지휘한 요동공격은 원정군의 부사령관격으로 있던 우군 도통사 이성계의 배신적인 행위로 실패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세워 개경으로 쳐들어와 정권을 잡고, 최영을 충주로 유배 보냈다가 살해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정권을 탈취한 자'로 평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이성계를 위인으로 표현한다면 북한 정권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서다.
반대로 최영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한다. 평양 방송은 "최영은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자 청렴 결백해 아부아첨과 뇌물을 몰랐고, 싸움터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무적필승의 용장"이라고 치켜세운다. 더불어 최영은 요동공격으로 고려의 자주권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살해당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또한 철저히 이데올로기로 계산된 역사다.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북한식 역사관에서 최영은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으로 표현된다. 이 외 사관은 불필요하다. 북한 정권은 '마지막까지 북한을 지켜야 하는 충신'이라는 프레임만 취하면 된다.
한편, 남한 교과서에는 이성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교과서에 따라 서술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의견은 아래와 같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2011년 탈북한 김홍식 씨는 "남한과 같은 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북한에서 가르쳐서도, 가르칠 수도 없다. 만약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북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면 3대 세습까지 오지도 않았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씨는 "어릴 적부터 이성계를 배신자로 배워서 그런지 아직도 남한 역사 드라마를 볼 때 불편한 게 많다.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가 그랬다. 남북의 이질감을 느꼈다. 20년 넘게 북한에서 역사 세뇌를 당하다보니 역사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혼란스럽지만, 앞으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남북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기록과 사실이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된 기록으로서 바라볼 것인가, 있는 그대로 증거를 통한 객관적인 사실로 바라볼 것인가로 나뉜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굳이 분류하자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만큼 역사에 대한 개입이 과하다. '음흉한 계책실현', '배신', '매국배족'이라는 단어 선택이 그렇다. 이와 반대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사실로서의 역사다. 실제로 고려 말기는 기록으로 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이성계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관점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역사적 시각이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국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변형되는 역사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작된 역사가 일단 권력의 주도하에 주입되기 시작하면 3대 세습마저도 정당한 역사적 사실로 탈바꿈 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그르다.
국정교과서가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육부는 국검정혼용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소통 없이 만든 독재 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겠다는 것은 결국 북한과 같은 교육 독재, 정치적 세뇌 교육, 역사 날조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준식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국검정혼용 현장 적용 방안을 발표한 것은 국정교과서 보급의 강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아직도 지난 70년대 역사관에 사로잡혀 '졸속적으로 만들어진 국검정혼용 제도를 강제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70년대 사람이 있는 걸까. 있다면, 광화문으로 가서 촛불이 만들어 내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 현장 교과서부터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처럼 '이성계는 배신자'라는 하나의 프레임만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할 것이 아니라 시장 내 경쟁을 통해 다양한 교과서로 역사적 스펙트럼을 접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고 올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 경쟁에 자신 없는 몇몇은 국정 교과서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과거를 조작하는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옳은가, 그른가.
국정 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북한, 중국, 인도를 포함해 12개국이다. 국정 교과서가 왜곡된 시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진 사람들은 '북한 국사 교과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북한 교과서는 북한 정권에 의해 철저히 조작돼 있다. 국정교과서가 가진 문제점이자 본질적인 한계다.
2014년 탈북한 이철민 씨는 "남한 사람 대부분 이성계를 조선 건국의 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역적'이라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북한 사학계는 이성계를 '매국배족의 역적', 최영을 '애국명장'이라고 말한다. 같은 과거의 역사에도 남과 북의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 북한에서 이성계를 역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은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일부다.
"자기의 지위가 높아지자 고려정권을 빼앗을 음흉한 계책실현의 유리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이성계는 1388년 4월 요동원정의 기회를 타서 고려의 정권을 가로챘다. 위화도회군은 음흉한 정권탈취야망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엄중한 매국배족 행위였다"
"전국 도통사 최영이 총지휘한 요동공격은 원정군의 부사령관격으로 있던 우군 도통사 이성계의 배신적인 행위로 실패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세워 개경으로 쳐들어와 정권을 잡고, 최영을 충주로 유배 보냈다가 살해했다"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두고 '정권을 탈취한 자'로 평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이성계를 위인으로 표현한다면 북한 정권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서다.
반대로 최영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한다. 평양 방송은 "최영은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자 청렴 결백해 아부아첨과 뇌물을 몰랐고, 싸움터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무적필승의 용장"이라고 치켜세운다. 더불어 최영은 요동공격으로 고려의 자주권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살해당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또한 철저히 이데올로기로 계산된 역사다.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북한식 역사관에서 최영은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으로 표현된다. 이 외 사관은 불필요하다. 북한 정권은 '마지막까지 북한을 지켜야 하는 충신'이라는 프레임만 취하면 된다.
한편, 남한 교과서에는 이성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교과서에 따라 서술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의견은 아래와 같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2011년 탈북한 김홍식 씨는 "남한과 같은 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북한에서 가르쳐서도, 가르칠 수도 없다. 만약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북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면 3대 세습까지 오지도 않았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씨는 "어릴 적부터 이성계를 배신자로 배워서 그런지 아직도 남한 역사 드라마를 볼 때 불편한 게 많다.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가 그랬다. 남북의 이질감을 느꼈다. 20년 넘게 북한에서 역사 세뇌를 당하다보니 역사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혼란스럽지만, 앞으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남북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기록과 사실이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된 기록으로서 바라볼 것인가, 있는 그대로 증거를 통한 객관적인 사실로 바라볼 것인가로 나뉜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굳이 분류하자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만큼 역사에 대한 개입이 과하다. '음흉한 계책실현', '배신', '매국배족'이라는 단어 선택이 그렇다. 이와 반대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사실로서의 역사다. 실제로 고려 말기는 기록으로 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이성계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관점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역사적 시각이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국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변형되는 역사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작된 역사가 일단 권력의 주도하에 주입되기 시작하면 3대 세습마저도 정당한 역사적 사실로 탈바꿈 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그르다.
국정교과서가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육부는 국검정혼용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소통 없이 만든 독재 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겠다는 것은 결국 북한과 같은 교육 독재, 정치적 세뇌 교육, 역사 날조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준식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국검정혼용 현장 적용 방안을 발표한 것은 국정교과서 보급의 강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아직도 지난 70년대 역사관에 사로잡혀 '졸속적으로 만들어진 국검정혼용 제도를 강제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70년대 사람이 있는 걸까. 있다면, 광화문으로 가서 촛불이 만들어 내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 현장 교과서부터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처럼 '이성계는 배신자'라는 하나의 프레임만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할 것이 아니라 시장 내 경쟁을 통해 다양한 교과서로 역사적 스펙트럼을 접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고 올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 경쟁에 자신 없는 몇몇은 국정 교과서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과거를 조작하는 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옳은가, 그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