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북한] 이야기 여덟, 北 단 한 마리의 오징어가 없다(2012년)

북한은 김 씨 일가의 나라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시스템이 변하며 행동 하나에도 사적지가 추가되는 곳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단지 한 순간 단어를 혼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수 백년간 이어져 온 언어의 특성과 단어가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곳이다.
 
과거 북한의 방문이 허락됐을 때 짧은 일정으로 평양에 다녀온 설영식 씨가 이러한 증언에 힘을 보탠다.
 
자신을 안내해줬던 가이드가 고마웠던 설 씨는 남한으로 귀국 전 날 가이드들에게 대성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어코 거절하던 가이드는 보통강 호텔 지하 에서 술 한 잔만 사달라고 간청했다.
 
설 씨는 북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겠다는 호기심에 기꺼이 응했다. 보통강 호텔로 들어간 그들은 일본제 기린맥주와 마른 오징어 안주를 시켜 간단한 담소를 나눴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안주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설 씨는 종업원에게 땅콩과 마른 오징어 안주 추가 주문했다.
 
그런데 갑자기 종업원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오징어 안주는 없습네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던 설 씨는 진열장에 가득 놓인 오징어 안주를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설 씨는 속으로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안 주나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저기 있는 것은 오징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낙지입니다"
 
설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리 외부 문화와 차단돼 있는 상태라도 어떻게 호텔에 근무하는 종업원이 오징어와 낙지를 구분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설 씨는 약간의 실소를 띄우며 "저것은 낙지가 아니고 오징어죠. 마른 오징어. 낚지는 머리가 둥글고 다리가 짧죠"라고 설명하는 도중 종업원이 단호히 말을 자르며 다시 한 번 대답한다.
 
"낙지입니다
 
'오징어'라는 단어의 소멸은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과거 김정일이 현지 시찰 도중 오징어를 낙지라고 발음했고 주변에 어느 누구도 김정일에게 오징어라고 알려주지 못했다. 그것이 교시로 일반화 되어 일반 주민들에게도 전파됐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북한에는 '오징어'라는 발음은 있어도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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