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오마이뉴스 경제 메인 글] 금리 인상에 쫄고 있을 그대에게

지난 11월 8일 미국 대선이 치뤄졌고, 트럼프가 당선됐다. 개인적으로 2016년 한 해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고 싶다. 신자유주의에 지쳐있을 그대에게, 트럼프의 당선은 '다시금 성장을 위한 경쟁을 하라'는 예비 신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까지 발에 불이나도록 힘껏 뛰어 다니며 살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뛰라는 것이다.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뛰라면 뛰어야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거란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그의 선거 공약만 봐도 그렇다. 소득세를 인하해 소비를 부양하고, 법인세를 내려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 보호와 함께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 미국 경기 부양의 기대 심리는 달러 가치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의 공약이 그대로 실행되면 물가와 시장금리가 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정 지출을 늘리면 시장에 '돈이 풍부해진다'. 그러면 자연히 돈의 가치가 줄어든다. 이 후 물가가 오른다. 중앙 은행은 금리 상승 압박을 받게 되고 시중의 돈을 다시 '빨아 들여' 물가를 안정시킨다.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면 한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돈은 이자를 많이 주는 곳으로 몰린다. 1000만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A은행은 10%, B은행은 5%의 이자를 약속한다. 누구든 A은행에 돈을 맡기려 할 것이고, B은행이 파산을 면하려면 자연스럽게 금리를 10% 내외로 올려야 한다. 같은 이치다.

한국은 1300조라는 가계부채 중 부동산 구입을 목적으로 한 대출이 50%가 넘는다. 지난 해는 51%였다. 그래서인지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대출 이자가 높아지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자 내느라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부동산 보유자는 '트럼프가 공약을 지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쫄지마라.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다. 우리에게는 미의회와 중국이 있다.

여담이지만 7월 경 집을 한 채 샀다. 난생 처음 세대주가 됐다. 은행에 빚을 내어 산 집이라 썩 '내 집'이란 애착이 없다. 역시 문제는 대출이자다. 변동금리라 금리가 오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트럼프 당선 이 후 지속적인 금리 인상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에게 걱정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마냥 쫄 필요는 없다. 이유는.

2008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전세계가 휘청였다. 당시 미국은 그로기 상태였다. 미국은 '내수의 나라'다. 내수로 먹고 산다. 민간 부문의 침체로 당시 미국 경제는 2008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렸다. 2010년부터 경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부채가 100%를 넘어 섰다. 현재 미국 부채는 약 20조 달러다. 20조 원이 아니다. 20조 달러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공약을 이행하면 5조 3000억원의 부채가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데 한계를 갖는 이유다. 미 의회 또한 정부 부채가 계속해서 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 선에서 정치-경제적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해 맥락없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살펴봐야 할 것은 '중국의 지속적인 반응'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이다. 12월 현재 중국은 1조 1157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 비율을 줄이려고 한다면 금리는 오르고 국채 가격은 떨어진다. 중국이 이를 두고만 볼 것인지 의문이다.

금리가 오를 때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를 예로 들자면, 10% 금리를 주는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급전이 필요해져서 판매를 하려한다. 시중 금리가 5%라고 가정하면, 누구든 5%의 더 많은 이익이 보장되는 채권을 구매하려 할 것이다. 반대로 시중 금리가 20%대인데, 10%의 채권을 팔려고 하면 구매자가 없어 가격을 기존보다 더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중국이 가진 미국 채권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적어져 가격이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국가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 미국 국채를 손에 쥐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 같은 관계는 삼성과 국민연금으로 족하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미국 국채를 순매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결국 트럼프 정부가 무작정 금리를 높일 수 없는 이유 중에는 미-중 관계까지 얽혀있는 것이다.

한국이 유독 금리에 민감한 것은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배우자상에 늘 '집 한 채 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라는 반문이 너무도 당연하게 용인되는 사회라서 그렇다. 가계 부채 중 약 650조가 부동산에 몰려 있다. 그래서인지 11월 초 트럼프 당선 소식에 넋이 나갔거나, 멘탈이 붕괴됐던 사람을 자주 봤다.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금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뭐든 적정선이 있기 마련이니까. 쫄지 말자.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오마이뉴스 민족 메인 글] 대한민국의 촛불과 북한의 혁명

한 개인이 국정을 농단했던 소위 '최순실 게이트'는 사회, 경제 전반의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와 관련해서 사상 최대 인파가 모여 촛불을 들었다. 결국 지난 9일 탄핵이 가결됐다.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오랫동안 당연한 듯 잊고 살았다.

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촛불시위를 보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감시 체제에서 억압받는 것을 일상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촛불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북한 관련 글을 쓰면서 최근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으레 하는 질문이지만, 두 번째 질문은 촛불이 밝힌 시대상을 반영한다.

1.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가.
2. 북한은 각각 개인이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첫 번째 질문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지 논리적으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는 있지만 불명확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대북 전문가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마저도 불확정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1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시민의 '한국 현대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 할 수 있는 방법은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 뿐이다"(p.179)

최근 북한 내 시장의 발달로 북한 정권의 감시 체계가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주민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는 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국지적 통제가 쉽다는 뜻이다. 전국적으로 나아가기 이전의 부분적 봉기는 주변 군부대에서 충분한 진압이 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이 가진 '이동에 대한 프레임'을 살펴봐도 한정된 지역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탈북자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경험적으로 거주지 외로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이 긴 세월동안 체득되어 있다.

이와 비교해서, 남한은 촛불집회 때 전국에 있는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상경하는 시위를 했다. 경찰의 제재에 막혀 안산 부근에서 이동의 제약을 받았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로도 '이동의 자유'에 대한 프레임이 전국적인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런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3년에서 5년 이내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북 전문가들은 시장의 발달을 그 근거로 한다. 실제로 지역에만 한정되어 생활했던 북한 주민들이 장사를 위해 근교 거리 이상으로 나가면서 생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적어도 '시장과의 거리'까지 생각의 틀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정도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혁명은 결국 '사람이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고 구체제의 모순을 고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사람이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이렇게 모이는 장소는 대부분 도시다.

북한의 도시화율을 보면 일본의 60년대 수준과 비슷하다. 현재 남한은 약 91%의 도시화가 진행되어 있고, 일본은 94%에 달한다. 북한은 6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고, 특정 도시로 동원할 수 있는 동원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금남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이 북한에는 없다.

북한 주민들에 의한 봉기가 불가능하다면, 북한 권력층의 쿠데타 가능성은 어떨까. 김정은 집권 이 후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서 보도하는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대부분 군부대였다. 김정은 초기, 권력 누수를 막고 군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불안한 권력 이양의 방증이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최근 탈북한 탈북자의 입장을 들어보면 북한 주민은 대부분 '반 김정은' 정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 김정은'은 군, 권력층, 기득권층에 대한 상징이다. 대다수의 주민이 소위 '평양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쿠데타는 그에 따른 명분과 주민들을 설득 시키기 위한 논리가 필요하며, 쿠데타 주도 세력과 주민간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 김정은' 정서로 볼 때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또한 쿠데타의 혼란한 과정 속에서 '대량 탈북 사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짙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만에 하나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면 '토크빌의 역설'과 '독재자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그는 혁명이 발발하는 것은 반드시 상황이 악화되어 갈 때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반면 토크빌은 물질적 조건이 호전될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생활수준이 개선되고 통제가 느슨해지면 주민들이 가진 정치 기대감이 부풀려지면서 급진적인 요구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그런 요구로부터 급속한 체제 와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근래 북한은 시장을 통해 생활수준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반 김정은 정서로 인해 통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더불어 도시화율은 낮지만 지역적인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그 안에서 서로 정보를 교류하면서 '소규모 집단이 모이는 공간'이 생겨난다.

시장이 북한 정권 내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결과물'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 각각 개개인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장을 이용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그 결과가 의도치 않게 체제 붕괴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주도 세력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통제에 대한 공포'가 있는 북한 주민 사이에서 주도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러한 징후는 금세 포착될 것이다. 이는 과거 봉기를 주도한 '학습된 행동 및 결과'가 전혀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다. 결국 북한의 체제 시스템으로 볼 때, 토크빌의 역설이 10년 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 북한은 '독재자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는 인터넷 개방과 관련된 문제다. 인터넷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독재자가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 혁명을 멀리하면 경제적 쇠퇴가 불가피하고, 적극 활용하고자 하면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국가에서는 정권이 주민들에 의한 민주화를 우려한다는 시각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인터넷을 개방했고, 가장 엄격하게 인터넷을 통제한다. 일부 권력층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내부망인 인트라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크게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일부는 외부망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한다.

북한 정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간부들을 끊임없이 도청하고 감청한다. 세밀하게 대화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체제에 위반되는 내용을 필터링한다.

2015년 탈북한 김준영 씨는 "'아랍의 봄' 이후 소셜 미디어가 정치적 영향을 끼치고, 이런 모습이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북한의 도청, 감청 행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3G 가입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내부망인 인트라넷만 접속이 가능한데, 일부는 '프록시(우회접속)'를 통해 외부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실제로 가능하다고 탈북자가 말했다.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해도 시장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유심이나 프록시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 밀수업자, 브로커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다. 외부 정보는 이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국경지대에서 들어온 정보들이 내륙까지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각 지역마다 핸드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 아랍처럼 민주화의 바람이 분다면, 국경지대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 또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국경 지역에 전파 방해 시설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북한 정권이 언제까지 강제적인 수단만으로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11월호 월간 북한 기고글] 북한의 시장과 절반주의(2016년)

한반도가 절반으로 갈린 지 어느덧 71년이 지났다. 그간 남북한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각종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언어와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 외에 모든 것이 변했다.
 
과거부터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유일지도체제의 견고함으로 내부 분열을 막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숙청과 총살을 당했다. 수직적인 사회 구조는 북한 주민에게 권력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줬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전 인민은 오직 김 씨 일가와 북한 정권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반면 남한은 각기 다른 시각차로 좌-우로 갈렸다. 통합에는 실패했지만 개개인의 다양한 목소리가 대립해가면서 많은 사회 문제들이 공론화 됐다. 이러한 수평적인 갈등은 사회 발전을 가속화 시켰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 88올림픽 이 후 시민 의식의 성숙, 최근에는 김영란 법으로 정치적인 도약까지 이뤄냈다.
 
남한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해마다 성장을 거듭했지만 북한은 94년 고난의 행군 이 후 후퇴를 거듭했다. 배급제가 붕괴됐고 주민 간 감시와 처벌 시스템이 무너졌으며 300만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의 체제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과 주민 사이에 갈등의 조짐도 보였다. 북한 주민은 정권에 충성한 대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자연스럽게 물질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곳곳에 시장이 생겼다. 배급제 붕괴로 북한 정권은 시장 통제에 대한 명분을 잃었다. 시장은 점차 규모를 확대해갔다. 초기 시장은 가난을 사고 팔았다. 입던 신발과 옷, 솜이불 등이 시장에서 거래됐다.
 
그러던 북한 시장은 중국과의 밀수 연계로 크기를 키웠다. 다양한 중국 공산품이 시장에 뿌려졌다. 이 과정에 북-중 밀수는 조직적으로 변했다. 시장을 통해 큰돈을 만지는 돈주가 탄생했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보다 돈주를 더 신뢰했다. 시장의 크기에 비례해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
 
순간일 것 같던 고난은 20여년이 넘게 지속됐다. 6070 세대 중 70년대 북한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생겼고 2030의 젊은 세대는 북한 체제의 실패를 은연 중 인정했다. 이 같은 입소문은 시장에서 급속하게 퍼져갔다.
밀수꾼들이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면서 2000년대부터 북한 시장에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절반주의다. 절반주의는 밀수꾼과 국경 경비대원 사이에서 밀수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이윤의 50%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용어가 생기기 시작한 즈음 절반주의는 단순히 밀수꾼과 경비대원의 갈등만을 의미했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정권과 시장 혹은 정권과 개인의 갈등 또한 절반주의라고 말한다. 절반주의는 북한의 사회 구조가 깨지면서 생긴 용어다. 위에서 말한 정권과 시장의 관계가 그렇고 지금부터 설명하게 될 세대 간 절반주의가 그렇다.
 
북한의 6070 세대는 70년대를 관통한 세대다. 70년대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에 한 발 앞서 있었다. 때문에 6070 세대는 지금까지도 70년대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세뇌의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세대이기도 하다. 반면,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2030 세대는 남한 드라마를 보고 자랐다. 덕분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체제의 실패를 고스란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세대가 느끼는 동시대의 평가는 양극단에 있다. 6070 세대는 기존의 북한 구조에 익숙해서 2030 세대의 개방적인 마인드에 손가락질 하고 김정은에 대한 비난을 내면화시킨다. 반대로 2030 세대는 6070 세대를 구태로 평가하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소위 꼰대라고 생각한다. 세대 간 절반주의는 북한을 겪어본 세대와 앞으로 겪게 될 세대의 충돌이다.
 
남녀 간에도 절반주의가 있다. 북한은 여전히 남성의 지위가 여성보다 높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경직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탓에 북한 여성은 늘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시장의 등장은 북한의 오래된 관습을 한 순간 바꿔 놨다. 남녀의 역할과 지위가 불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변했다. 여성들이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장사를 할 수 있는 드센 여성이 새로운 여성상으로 떠올랐다.
 
유리천장 속에 갇혀있던 북한 여성들이 틀을 깨고 시장에 나선 뒤부터 북한 여성들은 경제력이 없는 남성을 자물쇠로 비유했다. ‘하루 종일 집만 지킨다는 냉소적 표현이다. 과거 남성의 일방적인 가부장적 구조는 시장을 통해 남-녀의 경제적인 수평 구조로 바뀌었다. 일례로 남녀 간 겸상을 어색해하던 과거 북한의 모습과 달리 북한 여성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반면 북한 남성들은 여전히 남성의 권위만을 내세우며 신여성의 모습에 혀를 차고 있다. 남녀의 절반주의는 남성 위주의 낡은 관습과 여성의 합당한 권리 요구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의 방침 또한 절반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서 정권의 방침 중 절반만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년사를 비롯한 정권의 지시 혹은 교시 등의 방침이 내려올 때 마다 북한 정권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고난의 행군 때처럼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사회주의의 실패를 온 몸으로 느꼈다. 길 위에 시체가 널 부러져 있는 모습을 봤고 자고 일어나면 이웃이 죽어 갔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주민 희생을 강요하며 고난의 행군이라는 당적 구호만 내세웠다.
 
북한은 그 해 신년사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사회주의 3대 진지를 튼튼히 다지며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주민의 사회적 이탈을 막기 위해 더 큰 충성을 요구했다.
 
단순 구호와 충성 요구뿐이던 고난의 행군에서 순진하게 정권의 지침을 믿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아사했다. 이 후로 북한 주민은 정권의 방침을 따르는 사람을 두고 ‘49호 환자라고 말한다. 49호는 평양에 위치한 정신병원이다. 요코다 메구미가 갇혀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끈 바 있다. 49호 환자라고 하는 것은 정신병자라는 의미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의 지침을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나마 절반이라도 믿어야 하는 것은 해당 시스템 속에서 살아야 하는 북한 주민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권 방침에 대한 절반주의는 결국 정권과 주민의 지속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주민 뿐 아니라 북한 내 권력층에도 절반주의가 존재한다. 김정일의 권력이 김정은에게 세습되면서 권력층에도 분열이 생겼다. 갑작스럽고 불안정한 권력 세습이 김정은의 지위를 약화 시켰다. 북한 주민조차 김정은을 꼬마 장군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권력층도 마찬가지였다. 장성택은 김정은 뒤에서 짝다리로 서 있었고 김양건은 김정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주재로 열린 인민군훈련일꾼대회에서 눈을 감고 졸았다. 김정은은 자신과 관련된 권력층의 분열을 공포정치로 타개했다. 위에 말한 인물은 모두 김정은의 지시로 처형당했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오히려 권력층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측근 세력의 탈북 행렬을 봐도 그렇다. 일례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의 탈북을 들 수 있다. 그는 영국에서 북한 정권의 외화 벌이, 통치 자금 관리, 사치품 공급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태영호 공사의 탈북은 북한 체제에 심각한 내상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뒤 베이징 주재 북한 간부 탈북설이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세력과 반 김정은 세력의 갈등으로 표현되는 권력층의 절반주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와 맞물려 앞으로도 북한 고위층 탈북이 잇따를 것이다.
 
북한 내부 뿐 아니라 탈북자에게도 절반주의가 있다. 탈북자는 북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통해 탈북을 감행한다. 그들의 절반주의는 강의 절반이다. 도강 시 강의 절반을 넘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실제로 절반을 넘어서면 북한의 국경경비대는 탈북자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할 수 없다. -중 국경 경계지역이라 국가 간 도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도강 거리를 평균내면 48m. 탈북자들은 강의 절반을 자유와 억압의 경계로 본다. 대다수의 탈북자는 탈북을 감행한 후 불과 50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 내에서 자유를 억압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이렇듯 강의 절반주의는 개인의 마음 변화를 대변한다.
 
탈북자와 관련된 절반주의 사례는 한 가지 더 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돈을 송금할 때 정확히 절반을 커버비로 지급한다. 커버비는 안전한 송금을 보장하는 대가다. 전체 송금액 중 20%는 브로커에게, 30%는 국경경비대에게 지급해야 비로소 북한 가족에게 돈이 전달된다. 과거에는 각각 10%, 20%에 불과했지만 대북제재 이후 국경 경비 강화 지시로 절반 이상 커버비를 지급해야 안전한 송금이 이루어진다.
 
한편, 탈북자가 도강을 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시장경제체제와 계획경제체제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의 밀수꾼들이 시장경제체제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을 계획경제체제로 실어 나르면서 북한 내부의 시장화를 이끌고 있다. 균열이 일어난 북한 계획경제체제의 틈을 시장이 파고든 것이다. 초기에는 공산품이 대부분이었지만 2000년대 이 후부터 문화가 거래됐다. 한류가 대표적이다.
 
한류는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북한 내 한류의 역할을 꼽아보면 남한에 대한 북한의 흑색선전에 의문을 갖게 했고, 남녀의 인식 차이를 좁혔으며, 젊은 세대의 문화적 트렌드를 이끌었다. 북한에서 말하는 절반주의의 시작은 사실 한류였다. 북한 밀수꾼들이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남한 문화를 수입하면서 국경경비대에게 이윤의 50%를 준 것이 절반주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절반주의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절반주의라는 용어는 갈등과 대립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대부분 고착화된 구시대의 악습과 새롭게 등장한 사회 구조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북한 정권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국경지대에 철조망을 강화하고 전파 탐지기를 통해 해외 연락선을 차단하는가 하면 강력한 시장 통제로 주민들의 생활을 옥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통제가 심해질수록 북한 주민은 더욱 더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 주민이 수동적으로 통제를 받아들이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북한 정권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 시장과 절반주의가 있다.

[북한] 이야기 온, 北 회식에서 지켜야 할 매너(2016년)

 
 
북한의 직장인은 회식을 의미하는 '음식 자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20159월 탈북한 민정민(41)
 
"북한에서는 여러 명이 모여 음식 자리를 열 때 음식에만 집중하면 놀림을 받아요. 많은 양을 먹으려고 빨리 빨리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게걸투사'라는 수식어가 붙죠. 그렇게 한 번 낙인찍히고 나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기 힘들어져요"

"반면에 음식 자리에서 음식을 남기거나 적게 먹는 사람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집안 형편이 좋거나 경제적 여건이 좋죠. 남한에 와서 조금씩 먹으면 '깨작깨작 먹는다'라며 좋아하지 않는데 북한은 반대로 그렇게 먹어야 호감을 사는 거죠"

때문에 일부 사람은 음식 자리에 가기 전에 몰래 배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성의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특히 직장에서 전 직장인이 모이는 음식 잔치를 할 때는 더 그렇다.
 
탈북민 이철민 씨
 
"직장에서 음식 잔치를 하면 작업반장이 반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해요.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작업반원들의 시선이 있으니 품위를 유지하라'는 거죠. '양적으로 먹지 말고 속도를 줄이라'를 거듭 강조해요"

"직장에서 조직하는 음식 잔치는 대부분 작업반을 평가하는 시험장의 역할이 강해요. 일종의 이미지 관리인 셈이죠. 일례로 음식을 권할 때 그대로 받아먹는 사람을 '없어 보인다'고 생각해요. 사양하면 '예의 있다'고 평가 받죠"

이 씨는 이 같은 문화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이 후에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탈북민 김지영 씨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사람들이 지금의 직장인이죠. 당시에는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양보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던 때였잖아요. 같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쓰러져 죽었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동네에서도 도둑질이 흔했죠. 그러니 북한 직장의 음식 잔치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고난의 행군 때보다 사는 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끼니를 마음 놓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 북한 주민들한테 가장 민감한 것이 쌀 가격이잖아요. 직장에서 음식 잔치를 할 때 참는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인성을 의미하는 이유에요.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닐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죠"

북한 체제가 실패하면서 음식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게 됐다. 북한 주민이 음식 앞에서 지켜야 할 매너는 역설적이게도 '배고픔'인 것이다.
 

[북한] 이야기 아흔아홉, 북한에는 독재자의 딜레마가 있다(2016년)

북한은 '독재자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는 인터넷 개방과 관련된 문제다. 인터넷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독재자가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 혁명을 멀리하면 경제적 쇠퇴가 불가피하고 적극 활용하면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국가에서는 민주화를 우려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인터넷을 개방했고 가장 엄격하게 인터넷을 통제한다. 일부 권력층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쓰는데 내부망인 인트라넷만 접속되도록 차단했기 때문에 사실상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일부는 외부망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한다.
 
북한 정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간부들을 끊임없이 도청하고 감청한다세밀한 대화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체제에 위반되는 내용을 필터링한다.

2015년 탈북한 김준영 씨
 
"'아랍의 봄' 이후 소셜 미디어가 정치적 영향을 끼치고 이런 모습이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북한의 도청, 감청 행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북한의 3G 가입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인트라넷만 접속이 가능한데 일부는 '프록시(우회접속)'를 통해 외부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실제로 가능하다고 탈북자가 말했다.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해도 시장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유심이나 프록시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 밀수업자, 브로커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요. 외부 정보는 이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입니다"
 
밀수를 경험했던 탈북민 홍지호 씨
 
"국경지대에서 들어온 정보가 내륙까지 퍼지는 건 시간문제에요. 각 지역마다 핸드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이죠. 북한 내부에서 아랍처럼 민주화의 바람이 분다면 국경지대부터 시작될 것 같아요. 북한 정권 또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국경 지역에 전파 방해 시설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고요"
 
노동신문, 우리민족끼리, 조선중앙통신은 한 결 같이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한다. 시스템이 우수하다면 국가의 강제가 아닌 북한 주민 스스로 인터넷을 통해 대외적으로 알리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은 늘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자신감이 없는 탓이다. 결국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북한 체제와 독재자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무너뜨릴 것이다.

[북한] 이야기 아흔여덟, 北 겨울철, 인민군 탱크는 택시로 변한다(2016년)



 
북한군은 12월부터 3월까지 전군이 동계훈련에 돌입한다. 훈련에 들어서면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장비가 훈련에 직접적 동원된다. 특히 기동타격 부대에 연유(기름)가 공급되어 운전병들의 사기가 오른다.

북한군 제 806 기계화 타격군단 탱크운전병 초기복무자 출신 손광호(34)
 
"보병들은 1년 내내 훈련에 동원되는 편이지만 기계화병이나 운전병들은 평소 부업 농사만 하다가 동계훈련이 돼서야 겨우 훈련에 투입돼요. 연유사정 때문이죠"

"동계훈련이 시작되면 탱크나 장갑차들이 거리로 나서요. 이 때 만큼은 기계화 병임을 실감하죠.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있어요. 기계화 운전병들은 훈련 기간 동안 장거리 상인을 태워주고 이동비를 받죠"

장거리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건은 북한 정권이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장거리 상인 대부분 검문검색 초소에서 물건을 압수당한다. 상인들은 '이윤보다 검문소 통과가 우선'이라고 말할 정도다.

검문초소는 사람은 물론 차량, 소달구지 등 움직이는 물체까지 자세하게 검문한다. 검문초소를 피해가려해도 불시 검문 등의 위험이 따른다. 장거리 상인들은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군인들의 동계 훈련을 이용한다.

동계훈련 시기 동원되는 기계화 장비, 탱크, 장갑차는 검문소를 검문검색 없이 통과할 수 있다. 특별한 지시 없이 군과 관련된 장비를 검문할 경우 군법에 회부된다.

인민군 출신 탈북민 김철민 씨
 
"기계화 운전병들은 상인과 연계해 돈을 받고 탱크와 장갑차를 이용해요. 장거리 상인들은 비싼 비용에도 흔쾌히 돈을 지불하죠. 일부 상인은 동계 훈련 기간 동안 마약과 같이 액수가 큰 불법 물자를 유통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요"

"거래 성공 여부에 따라 장거리 상인이 기계화 운전병에게 주는 '위험 부담비'가 높아져요. 하지만 개의치 않아요. 운전병이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고서도 탱크를 이용하지 않았을 때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동계 훈련동안 운전병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군인 정신 보다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물질 정신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이야기 아흔일곱, 北 군의관에 지원하는 이유(2016년)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 북한의 의사들이 의식주가 보장되는 군병원 내 군의관으로 가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보위성 병원은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원에서는 해외에 파견직 의사들을 보내고 달러를 벌어들인다.
 
돈 잘 버는 의사들은 대개 보위성 병원에 근무한다. 북한 의사들 사이에서는 '보위성 병원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한밑천 마련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북한 의사들은 중앙급 종합병원에 가지 못할 바에 그나마 돈 벌이가 가능한 일반 군부대가 낫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의사 경력이 있던 탈북민
 
"평양의학대학과 각 도에 있는 의학대학들에서 배출되는 의료인들이 선호하는 병원이 중앙급 종합병원입니다. 이곳에 배치되는 것은 의학대학에 입학하는 것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해요. 종합병원은 권력경쟁의 한 부분에요. 일단은 대우가 좋고 승진도 빨라요"
 
"하지만 지방 병원은 시설이 좋지 않고 병원 운영도 쉽지 않죠. 약은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UN 구호품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 마저도 의사들이 구호품을 장마당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일반 지방 병원은 의사임에도 장사를 따로 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는 거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 의사들은 군의관에 지원한다.
 
인민군 출신 탈북민 김호진 씨
 
"군의관들은 군대 내에서 상당히 대우가 좋아요. 의식주가 안정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죠. 더불어 일반 주민들에 비해 군인들이 영양상태가 좋다보니 전염병의 확률도 낮고 비교적 약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선군정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군의관이 군부대 내 유일한 의사에요. 이들에게 치료받기 위해서 군인들은 민가에서 약탈한 물품을 치료비로 내기도 해요. 때문에 부대 내에서는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군의관이죠"
 
탈북민 이근철 씨
 
"외과적 수술을 병행해야 하는 부대 밖 의사와는 달리 군의관은 기껏해야 동상과 피부병 정도만 치료하면 돼요. 크게 부담이 없죠. 이 마저도 부대 내에서 별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에 그쳐요. 군부대 중 가장 편한 보직이 아닐까 생각 해요"
 
"선군정치를 하는 북한에서는 지방병원보다 오히려 군부대 내 UN 구호약품이 더 많이 있어서 일반인들은 군의관에게 치료해야 낫는다고 말해요. 지방에서는 군의관의 입김이 쎈 편이고요"
 
북한 의과 학생들이 군의관을 지원하려는 이유는 결국 돈벌이다. 북한의 실패한 체제가 의사를 장사꾼으로 만들고 있다. 그 중심에 군의관이 있다

[북한] 이야기 아흔여섯, 北 우물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는 것(2016년)



미국 NGO 단체인 '웰 스프링(Well Spring)'이 북한 내 우물파기 사업을 진행했다. 산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환경오염이 덜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에서 약수가 아닌 우물을 판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물에 자물쇠를 잠가 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내부 영상을 보면 우물 관리인을 두고 정해진 사람만 물을 퍼 올리는 모습도 관찰된다.

탈북민 이진영 씨
 
"강원도 부근은 아직 약수를 먹어요. 하지만 북한 내륙 쪽으로 가면 약수 대신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요. 우물에 자물쇠를 걸어 입구를 막아두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탈북 할 당시 그러니까 2012년 즈음에도 그렇게 잠가 놨어요. 북한은 가축을 키우는 축사 혹은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 등을 정화하지 않잖아요. 게다가 민둥산이 많아서 오염된 지역이 생각보다 많아요. 산 약수를 못 먹으니까 수질 보호를 위해서 지하수인 우물은 잠가 놓는 거죠"

탈북민 김호민 씨는 우물 자물쇠는 개인주의 확산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난의 행군전까지만 해도 북한에는 감시를 위한 공동체가 있었어요. 북한 정권의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서 3인이 서로 감시하는 체제가 존재했던 거죠. 당시만 해도 공동체라는 것은 서로 감시하기 위해 존재했었잖아요. 그런데 근래 우물에 자물쇠를 잠그면서 자신 혹은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이익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어요. 우물의 자물쇠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인 거죠. 감시 공동체가 소수 이익 집단으로 바뀌고 그 역할 또한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 때 어제까지 같이 이야기하던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 때부터 '내 목숨은 내가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북한 주민들 뇌리에 깊게 박힌 거죠. 이 후 시장이 늘어나고 발달하면서 '내가 잘 살고 봐야한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졌죠. 우물의 자물쇠는 그 동안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사소한 것 마저 나누려 하지 않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북한 주민이 우물을 이용하는 것은 전기 사정과도 연관이 깊다. 수도를 공급할 수 있는 전기 사정이 열악해 일반 가정까지 물을 끌어갈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더불어 일제시대 수도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상하수도 시설 정비가 엉망이다. 근래 북한 내 건설되는 아파트는 우물 사용을 전제로 건설 공사가 시작된다는 증언도 있다.

탈북민 홍인혁 씨
 
"우물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많고 우물의 수는 정해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몇몇 사람이 우물을 차지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으면 금세 바닥이 드러나지 않겠어요? 일부 사람은 허가된 우물을 통해 물을 길어오는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해요. 말 그대로 물 배달이죠"

최근 북한 주민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을 두고 '물고생'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만큼 식수 사정이 열악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물 확보를 위해 동원된다. 북한의 실패한 체제가 자유재인 물을 경제재로 바꾼 것이다.
 
우물 관리자는 우물에 자물쇠를 굳게 잠가놓고 우물 사용의 손익을 타산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북한 물 사정의 실상이다. 때문에 북한 주민의 물 확보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우물은 본래 퍼 올릴수록 물이 차오른다.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더욱이 햇빛을 보지 못하는 우물은 결국엔 썩고 후에 악취까지 풍긴다. 가두어 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북한 정권이 우물을 통해 배워야 할 대목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우물의 실패를 충분히 경험해왔다. 이제는 북한 정권과 주민 모두 자물쇠를 열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