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의 얼굴을 보면 유독 볼이 빨간 사람이 많다. 단순한 홍조 또는 북한이 남한보다 추우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못 먹어서 생기는 질병'이다.
의학 용어로는 '펠라그라'다. '니코틴산(니아신) 결핍'으로 나타난다. 주로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병이다. 북한의 위치를 감안해 볼 때 지역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펠라그라는 알코올 중독, 결핵, 위장병 등이 있으면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 질병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지방에 유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봄부터 가을 사이 나타난다. 급성일 때는 발열, 설사, 의식 장애를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니코틴산은 비타민 B3를 투여하면 효과가 있다.
북한에 펠라그라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는 '고난의 행군' 때다. 배급이 끊긴 후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면서 단백질이나 비타민 섭취가 현저히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는 북한 내 결핵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했는데 결핵은 펠라그라의 발병을 돕는다.
펠라그라는 '거칠거칠한 피부'라는 뜻이다. 주된 증상으로는 피부, 특히 얼굴에 홍갈색 발진이 생기며 겉이 두꺼워지고 색소 침착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얼굴이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배급을 받는다는 북한의 인민군도 펠라그라를 겪는다. 2012년 탈북한 인민군 출신 배윤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군의 3대 질병이 무좀, 펠라그라, 야맹증이다. 그만큼 인민군 내 일반적인 질병 중 하나다.
2012년 탈북한 김지영 씨
"펠라그라라는 말을 북한에서 쓰지는 않지만 얼굴에 수포 같은 게 생기면서 볼이 빨개지니까 병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죠. 북한에서는 펠라그라를 '개병'이라고 말해요. 개병에 걸렸다가 죽는 사람도 봤어요"
실제로 북한 내 펠라그라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 사람이 상당수다. 김 씨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펠라그라와 증상이 똑같아요. 확실히 나이 드신 분일수록 더 위험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점은 펠라그라의 경우 비타민제나 육류 섭취로 충분히 예방 및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편, 북한의 사회상도 펠라그라의 발병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북한 주민들은 고된 생활에 술을 많이 먹는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술을 마시면 영양분 섭취 부족으로 펠라그라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고된 생활 - 노동 - 미비한 식사 - 술의 악순환이 펠라그라 발병률을 높인다.
펠라그라에 걸리고 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 외에도 피로감, 우울증, 불안 등을 동반한다. 이 같은 증상은 북한의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심해진다.
2012년 탈북한 이만기 씨
"펠라그라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못 사는 나라의 질병'. 북한 매체는 대외적으로 마치 북한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펠라그라가 일반적인 질병인 것만 봐도 북한의 실상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어요?"
펠라그라는 술 섭취를 줄이면서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유지하고 금연을 하면 금방 증상이 호전된다.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임에도 그 흔한 비타민제를 먹지 못해 평생 붉은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북한 주민의 모습이다. 북한의 실패한 체제가 주민들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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