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북한] 이야기 예순여덟, 폭력보다 무서운 출신성분(2015년)

북한가족법 제 21조는 '배우자가 부부의 사랑과 믿음을 혹심하게 배반하였거나 그 밖의 사유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 이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혼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에 배우자의 성병, 폭행에 사유가 국한되어 있다.
 
북한가족법은 '부부관계를 계속할만한 정치, 도덕적 기초를 상실한 경우 이혼이 사회와 혁명에 이로울 때에는 용인하고 해로울 때는 부인한다'고 해석한다. 이혼 판결 시 정치적 측면이 고려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배우자의 폭력보다 출신성분이 거짓으로 판명됐을 때 이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다는 점이다. 북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편이 폭력을 쓸 때 이혼하는 비율이 전체 이혼율 중 10%를 차지하는 반면 출신성분이 나쁜 것으로 판명됐을 때는 30%에 달했다.
 
신념과 가치관의 불일치를 경험할 때는 21%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성관계에 대한 불만족(11%),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때(19%)보다 높은 수치다.
 
한편, 사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치가 30%(출신성분)21%(신념)로 전체의 51%나 된다. 하지만 단순한 수치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탈북민 최지원 씨
 
"과거에는 출신성분이 거짓이면 분명 이혼 사유가 됐어요. 물론 현재도 그렇죠. 그런데 중요한 차이점이 있어요. 과거에는 말 그대로 출신성분이 출세의 보증수표나 다름없었잖아요. 때문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뭇매를 맞았죠. 하지만 지금은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출신성분보다 장사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이 더 큰 성공의 열쇠가 됐어요. 따라서 최근 출신성분이 거짓이라 이혼하는 것은 '배신감' 때문이지 예전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에요
 
"가치관도 마찬가지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치관은 '당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척도였어요. 부부끼리도 김 씨 일가에 대해 모욕하면 신고하는 분위기였으니 이혼 사유가 당연했을 수 있죠. 하지만 최근에는 대놓고 '정은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예전에 가치관 차이가 충성심의 차이였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남녀 사이에 가치관이 서로 맞지 않는 것 그 뿐이죠. 남한 연인도 만나다가 헤어지고 그러잖아요. 똑같아요
탈북민 김미영 씨
 
"남한에서는 여성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하면 아주 큰 사건이고 이슈가 되지만 북한은 딱히 그렇지 않아요. 어느 정도는 참고 사는 경우가 많죠. 폭력 때문에 이혼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사상과 관련된 이혼 사례는 줄어들고 있죠. 북한이 변화하고 있는 의미에요. 하지만 아직도 출신성분 자체는 북한에서 출세 수단인 것은 분명해요. 과거보다 그 정도가 약해졌다는 의미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북한은 계급이 중요한 사회에요. 폭력보다 계급이 더 무서운 사회죠. 그래서 바람을 피운 것보다 신념이 맞지 않을 때 이혼 비율이 더 높은 거예요. 남한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 조금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그런 특수한 사회가 북한이죠
아직까지도 북한 내 출신성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기회가 닫혀있는 사회라는 의미다. 기혼자들은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출신성분이라고 말한다.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출신성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유리천장에 갇힌 계급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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