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북한] 이야기 예순일곱, 북한에는 수많은 박인수가 있다(2015년)



1955, 우리나라를 왈칵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44월부터 19556월까지 해군 헌병 대위를 사칭한 박인수가 여대생을 비롯해 70여명의 여인을 간음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피해 여성 중에는 국회의원과 고위관료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사는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라고 주장했으나 1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일부 여성은 정숙과 순결의 판단 기준이 뭐냐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여성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 분위기 탓에 그 마저도 금세 가라앉고 말았다.
 
북한에는 아직도 수많은 '박인수'가 살고 있다. 여성들을 유혹해서 성관계를 맺고 난 후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간혹 분하고 억울해서 신고하는 여성이 있지만 오히려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기 일 쑤다. 자기 몸은 자기가 간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설령 재판에 간다고 해도 남한의 55년대 판결처럼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해준다는 명목 하에 별 다른 죄목 없이 풀려나는 남성이 많다.
 
탈북민 김영지 씨
 
"흔히 북한이 성에 대해 엄청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정반대에요. 성추행은 만연해있고 간단한 신체접촉은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가 다니던 기업소에서 간부가 제 신체 일부를 툭툭 치고 가기도 했는데 수치심은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죠. 항의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거든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술자리에서 '술 좀 따라 달라'는 이 한마디도 엄청난 사회적 이목을 끌더라고요. 워낙 북한에 길들여진 탓에 '저게 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북한에서는 그냥 따라주면 그만이잖아요. 이 정도는 쉬운 일에 속하죠. 가끔 간부들이 자기 방으로 부를 때가 있는데 이 때는 더 심각하게 추행해요. 성관계까지 요구하는 간부들도 있고요. 물론 몇 번은 거절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들어주기도 해요
 
탈북민 박철호 씨
 
"북한에서는 성폭행을 당한다 해도 남자의 책임보다는 여자의 책임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조신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래요. 때문에 책임감 없이 여성과 관계를 맺고 없던 일처럼 생각하는 남성이 많은 거죠
 
"신고를 해도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을 악용해서 여러 여자를 추행하는 사례도 흔하게 있어요. 북한에서 알고 있던 한 사람은 간음과 추행으로 3년 동안 30명 넘는 여자와 관계를 맺기도 했어요. 북한판 카사노바인 셈인데 그 흔한 재판 한 번 받지 않았죠. 그 마저도 매 번 자랑하기 바빴어요. 물론 북한에서도 그런 남성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닥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박인수는 결국 2, 3심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1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박인수'가 아무렇지 않게 여성을 강제로 추행하고 있다. 그에 따른 별 다른 제재도 받지 않는다. 여성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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