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다시 전화하실까봐 전화번호를 바꾸지 못하고 있어요"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밤을 지새우는 탈북자가 2만이다. 브로커를 통해 북한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추억의 목소리만 간직한 채 살아가는 탈북자들에게 가족의 애틋함은 그 어떤 감정보다 우선 될 수밖에 없다.
탈북민 이선영 씨.
"2000년 브로커를 통해 엄마와 딱 한 번 통화를 했어요. 당시 017이라는 번호를 쓰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부모님한테 다시 전화가 올까봐 최근까지 전화번호를 바꾸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핸드폰 번호를 통일하면서 010으로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됐어요. 엄마가 전화를 해도 번호가 바뀌어서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화 올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거든요. 나중에 부모님이 전화하셨는데 없는 번호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그 날부터 선영 씨는 자신의 시계가 멈춘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도 밤마다 엄마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꿈을 꿔요. 그때의 목소리가 자주 꿈에 나와요. 슬픈 건 점차 흐릿해지고 있어요. 녹음이라도 해놓을 걸 그랬나 봐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워요“
선영 씨에게 핸드폰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간직한 추억의 물건이다.
통신사에서 핸드폰을 바꾸지 않으면 임의의 010 번호로 바뀐다는 통보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아직까지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편리함이 그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정을 잘 모르는 남한 친구들은 그녀에게 핸드폰이 구식이라며 교체하라고 말한다. 폴더를 열 때 나오는 작은 화면이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낡은 핸드폰을 버린다는 것은 다시금 엄마를 버리고 도망가는 일처럼 느껴진다.
“제 시계는 10년 전에 멈추어 있어요”
최근 들어 선영 씨는 통신사 전화를 더 자주 받는다. 번호를 바꿔야 한다는 전화다. 선영 씨는 요금을 더 내도 좋으니 지금의 017 번호를 평생 이용할 수 없냐고 묻는다. 대리점까지 찾아가서 지금 번호를 계속 쓰면 안되겠느냐고 사정도 한다. 하지만 답변은 늘 똑같다.
“바꿔야 합니다”
선영 씨는 잠시 헷갈린다. 자신의 마음을 바꿔야 하는 건지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하는 건지. 선영 씨는 남한에 적응하기 위해 가족을 놓아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도 한다.
"핸드폰을 하나 더 구매했어요. 본래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음성이 녹아 있는 핸드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용할 생각이에요. 2년 뒤에는 반드시 010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조금씩 인정해야 하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그녀에게 핸드폰 번호는 단순한 숫자 조합이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있는 추억의 끈이다.
선영 씨는 휴대폰을 하나 더 구입하고 나서야 조금은 편히 잠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매일 밤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보냈던 시간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두 대의 휴대폰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핸드폰은 어머니를 위해, 새로운 핸드폰은 자신의 정착을 위해.
그 후 이야기
현재 이선영 씨의 핸드폰 번호는 010으로 시작한다.
“인터뷰 했던 게 벌써 6년 전이네요. 어머니와 통화했던 핸드폰은 잘 보관해두고 있어요. 앞으로도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북한에 있는 제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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